청도신문 시작페이로 설정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조기동 농업칼럼예원호 수필방서영윤의 남산전망대박윤제 이야기 향토사김웅래 촌장의 소소한 청도 이야기양윤석 풍수산책박영환 서원재실 탐방

최종편집:2020-10-25 오후 07:07:16

전체기사

조기동 농업칼럼

예원호 수필방

서영윤의 남산전망대

박윤제 이야기 향토사

김웅래 촌장의 소소한 청도 이야기

양윤석 풍수산책

박영환 서원재실 탐방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칼럼 > 박영환 서원재실 탐방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경주 이씨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종친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화수정(花樹亭)

경주 이씨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종친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화수정(花樹亭)

2020년 09월 28일(월) 14:38 [인터넷청도신문]

 

청도군 청도읍 고수 2리(냉정 冷井)에 소재하는 화수정을 찾았다. 이곳은 경주 이씨 종친들이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종친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세운 재사이다.
경주 이씨의 시조는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다. 그는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혁거세(赫居世) 왕을 옹립하여 신라를 세웠으며 아찬(阿餐)에 올랐고 유리왕(儒理王) 9년에는 급량부장(及梁部長)이 되었으며 이씨(李氏)로 사성(賜姓)을 받았다. 그 이후 경주이씨의 중시조는 이거명(李居明)이다. 그는 신라 때 십칠 관등 중 귀족 진골(眞骨)만이 오를 수 있었던 관직인 소판(蘇判)을 지냈다. 경주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8대파는 성암공파(誠菴公派)· 이암공파(怡庵公派)· 익재공파(益齋公派)· 호군공파(護軍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 사인공파(舍人公派)이다.
청도에 자리를 잡은 국당공파 입(入) 청도조(淸道祖)는 국당(菊堂) 이천(李蒨)의 후예인 24세(世) 만송(晩松) 이휘(李翬)[1466 세조12〜1515 중종10) 선생이다. 1484년(성종15) 문과에 올라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 양주(楊州) 목사(牧使)를 지냈으며 청도를 빛낸 사람들 175명 중 한 분이다.
만송의 장자인 문강공(文剛公) 이사균(李思均)[1483 성종 14〜1544 중종 39]은 1496년(연산군2)에 14세로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에 이르렀고 증직은 이조판서(吏曹判書)이다. 호는 일매당(一梅堂)이며 ‘문강’은 시호이다. 기묘사화 뒤에 냉정에 돌아와 시유(詩遊)하다가 62세에 졸했다. 만송의 손자 이령(李柃)은 1503년(연산군9) 출생하여 1524년(중종19) 22세에 무과에 급제했다. 현감(縣監), 도호부사(都護府使), 평안도 관찰사(觀察使), 개성 유수(留守)를 거쳤으며 평안도 관찰사 때 양병(養兵)과 치산치수(治山治水)에 힘을 쓰고 청백리로 이름이 높아 향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이 재사는 1917년에 익재공파, 국당공파, 상서공파 33명이 2240원(당시금액)을 출몰하여 창건했으며 1922년에 새로 중수한 이래 수차에 보수하였으나 다시 노후하여 종친들의 협찬금으로 2008년 1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정자와 축대등을 크게 정비하였다. 2009년 4월 29일 청도군 화수회(당시 회장 이복수)는 화수정 보수공사 표지명 제막식을 가졌다. 통훈대부 홍문관 이중구(李中久)는 상량문에 “화수정은 땅이 숨기고 하늘이 아끼는 곳에 마련한 경주 이씨의 화려한 집”이라 했고 승지 김홍락(金鴻洛)은 화수정기에 “경주 이씨는 대대로 이곳에 살아 깊은 뿌리에 무성한 잎, 굳은 줄기와 번성한 가지가 되었으며 윤리의 돈독하고 두터운 풍속이 끊이지 않았다. 그 가운데 정자를 짓고 이름을 ‘花樹’라 하였으니 여러 종친들은 집 이름의 뜻을 체득하여 뿌리를 같이하는 우호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와우산을 배경으로 한 재사를 바라보며 ‘화수정’이란 시제로 몇 줄 올렸다.
일가의 화목和睦은 조상 향한 꽃이요
조상의 음덕蔭德은 후손 위한 꽃다발
약속의 화수정신花樹精神에 오늘 있고 내일 열려
청도군 청도읍 고수 2리(냉정 冷井) 와우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화수정을 찾았다. 이곳은 경주 이씨 종친들이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종친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세운 재사이다.
경주 이씨의 시조는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다. 그는 진한(辰韓)의 표암봉(瓢岩峰)아래 태어났으며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及梁部)의 촌장으로 혁거세(赫居世) 왕을 옹립하여 신라를 세웠으며 아찬(阿餐)에 올라 군무(軍務)를 장악했다. 그 뒤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32)에는 급량부장(及梁部長)이 되었으며 이씨(李氏)로 사성(賜姓)을 받았다.
그런데 경주이씨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중시조는 이거명(李居明)이다. 그 는 신라 때 십칠 관등 중 귀족 진골(眞骨)만이 오를 수 있었던 관직인 소판(蘇判)을 지냈다. 경주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8대파는 성암공파(誠菴公派)·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派)·국당공파(菊堂公派)·부정공파(副正公派)·상서공파(尙書公派)·사인공파(舍人公派) 등이다.
청도에 자리를 잡은 입(入) 청도조(淸道祖)는 국당(菊堂) 이천(李蒨)의 후예인 24세(世) 만송(晩松) 이휘(李翬)[1466 세조12〜 1515 중종 10) 선생이다. 1484년(성종15) 문과에 올라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 양주(楊州) 목사(牧使)를 지냈으며 청도를 빛낸 사람 중 한 분이다.
만송의 장자인 문강공(文剛公) 이사균(李思均)[1483 성종 14 〜 1544 중종 39]은 1496년(연산군2)년에 14세로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에 이르렀고 증직은 이조판서(吏曹判書)이다. 호는 일매당(一梅堂)이며 ‘문강’은 시호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국당(菊堂) 천(蒨)의 후손으로 연산군 때 급제하였다. 중종 때 홍문관 부교리를 역임하였으며, 벼슬이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에 이르렀다. 형조판서(刑曹判書)가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기묘사화 뒤에 청도 냉정(冷井)에 돌아와 시유(詩遊)를 하다가 62세에 졸했다.
만송의 손자 이령(李柃)은 1503년(연산군9) 출생하여 1524년(중종19) 22세에 무과에 급제했다. 현감(縣監), 도호부사(都護府使), 평안도 관찰사(觀察使), 개성 유수(留守)를 거쳤으며 평안도 관찰사시는 양병(養兵)과 치산치수(治山治水)에 힘을 쓰고 청백리로 이름이 높아 향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이 재사는 1917년에 창건했으며 1992년에 새로 중수한 이래 수차에 보수하였으나 다시 노후하여 화수회 정기총회의 의결을 거쳐 2008년 1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정자와 축대까지 완전히 정비하였다. 2009년 4월 29일은 청도군 화수회(당시 회장 이복수)는 화수정 보수공사 표지명 제막식을 가졌다.
화수정 상량문에(통훈대부 홍문관 李中久 撰)는 화수정은 땅이 숨기고 하늘이 아끼는 곳에 마련한 경주 이씨의 화려한 집이라 했고 화수정기(승지 金鴻洛 撰)에는 “여러 종친들은 집 이름의 뜻을 체득하여 뿌리를 같이하는 우호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사균(李思均)
본관은 경주이며, 국당(菊堂) 천(蒨)의 후손으로 연산군 때 급제하였다. 중종 때 홍문관 부교리를 역임하였으며, 벼슬이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에 이르렀다. 형조판서(刑曹判書)가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15세인 열헌(悅軒) 이핵(李翮)은 고려시대 문하평리(門下評理) 증(贈)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경상북도 경주(慶州)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초기 신라의 6촌(六村) 중 알천 양산촌의 촌장이었던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한다.
시조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及梁部)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이다. 표암공이라는 호칭은 알평이 애초에 경주 박바위에 강림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경주이씨는 스스로 정통파 대종임을 내세우는데, 이씨 중에는 표암공에 연원을 두고 있는 본관이 많아 합천·가평·평창·원주·아산·재령·우봉이씨 등이 이에 속하며, 이 밖에도 우계이씨와 성주이씨의 일부도 알평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분적종까지 합치면 경주이씨가 이씨의 대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이씨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중시조는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이다. 거명은 신라 때의 인물로 진골(眞骨) 출신이다. 그는 시조 알평의 36세손이며 시조로부터 현재(熙字돌림)까지는 대략 75대(약 2,000년)가 된다. 경주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8대파는 성암공파(誠菴公派)·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派)·국당공파(菊堂公派)·부정공파(副正公派)·상서공파(尙書公派)·사인공파(舍人公派)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주이씨 [慶州李氏] (두산백과)





화수정(花樹亭)

○소재지: 청도군 청도읍 고수 2리 285번지
○건축연대: 1922년
○건물구조: 목조와가 정면 4칸, 측면 2칸
○관리문중: 경주 이씨
○설립목적: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종친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후손들에 의해 세워진 경주 이씨의 선대를 위하는 제사이다.
○보수: 신축된 후 수차에 보수하였으나 90여년이 지나면서 노후된 건물로 서까래가 썩고 기와가 파손되어 선대 유산에 누가 됨으로 화수회 정기총회의 의결을 거쳐 2008년 1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정자와 축대까지 완전히 정비하였다. 공사 총액은 7300여만 원이다. 당시 청도군 화수회장은 이복수이며 사무국장은 이정길, 재무국장은 이문희이다.
○현황: 와우산 기슭, 청도읍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있으며 수령 수백 년 은행나무가 있다. 입구에 화수정 표석이 있으며 단단한 스테인리스강 문이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마당 은행나무 밑에 보수공사를 설명한 비석이 있으며 정자 마루 벽에는 ‘화수정기’ ‘화수정기 상량문’, 등 현판이 걸려 있다.
경주 이씨는 1550년경 이대수가 청도읍 원정리 정촌에 입향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이대수는 풍수지리설을 따라 자손 발복의 길지를 찾아다니다 원정리 정촌을 적합한 곳으로 판단하였다 한다. 이후 1581년경 이정탁이 청도군 원정리에서 고수리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정한호 기자  chd0005@hanmail.net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인터넷청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인터넷청도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기고]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추..

청도경찰서, ‘찾아가는 어르신 ..

이서면 추석맞이 새마을대청소 및 ..

- 청도군 새마을지도자 등 벌초시즌..

임종식 경북교육감,

청도경찰서,

청도군, 토속 어족자원 보전을 위한..

청도군 매전면 자율방범대 방역 실..

- 경북교육청, 스마트 해양 수산 산..

이만희 의원, 농식품부 장관·농협..

최신뉴스

이철우 도지사, 이건희 삼성그룹 ..  

경북도, 아프리카TV와 음악으로 독..  

『제1회 재경청도군향우회장배 골..  

청도경찰서, 찾아가는 어르신 교..  

슬기로운 한국생활의 찐~조력자 원..  

과정 중심 평가’활성화를 위한 소..  

경북도, 혈액수급 위기 극복을 위..  

경북농업기술원, 복숭아 초코볼로 ..  

아빠와 함께해서 너무 좋아요..‘..  

울릉도, 갈라파고스제도 등‘섬 식..  

경북 자동차산업, 산학연 협력으로..  

경북의 명소, 경주엑스포에서 맺어..  

주한미군가족 경북 문화․관..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 백두..  

경북교육청, 공동조리로 안전하고 ..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인터넷청도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15-81-12007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청화로 71-11 / 발행인: 정한호 / 편집인 : 최현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한호
mail: chd0005@hanmail.net / Tel: 054-371-0005 / Fax : 054-371-077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58 / 등록일 : 2010년 12월 6일
Copyright ⓒ 인터넷청도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