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신문 시작페이로 설정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조기동 농업칼럼예원호 수필방서영윤의 남산전망대박윤제 이야기 향토사김웅래 촌장의 소소한 청도 이야기양윤석 풍수산책박영환 서원재실 탐방

최종편집:2020-10-25 오후 07:07:16

전체기사

조기동 농업칼럼

예원호 수필방

서영윤의 남산전망대

박윤제 이야기 향토사

김웅래 촌장의 소소한 청도 이야기

양윤석 풍수산책

박영환 서원재실 탐방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칼럼 > 박윤제 이야기 향토사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조세(租稅)를 하기 위해 만든 양지척(量地尺)

조세(租稅)를 하기 위해 만든 양지척(量地尺)

2020년 09월 28일(월) 14:34 [인터넷청도신문]

 

양지척은 땅에서 나는 곡식에 대해서 조세를 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이다. 양전척(量田尺)이라고도 불렀고. 양지척은 운용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었다. 고려 문종 때에는 삼동척(三同尺)이, 세종18~26년사이에는 주척(周尺)이 세종 26(1444)년에는 주척을 기준으로 한 육등전척(六等田尺)이 인조 때에는 갑술척이 각각 양지척이 되었다.

고려 중기에서 조선초기 까지는 농지의 토질에 따라 상전척․중전척․하전척 으로 세 가지를 사용함으로써 같은 단위로 표시된 전지에서 같은 분량의 조세를 거두는 동과수조(同科收租)의 법칙이 시행되었다.
세종 26년에 동과수조의 법을 없애고 양지척의 길이를 통일시키려다 이루지 못하고 당시의 전품 6등에 따라 6등급의 양지척을 사용하던 것을 효종4년 (1653)에 이르러 종전의 1등 양지척을 기준으로 모든 양지척을 통일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평(坪)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가? 평이란
토지 및 건물의 면적을 나타내는데 사용한 넓이 단위로 경술국치 이후 1960년대 미터법이 정식 발효되기까지 사용하였는데 일본의 <大寶令集解>의 <高麗法>에서는 고려척 5척을 1步라 하였으니 사방 5척이 만드는 정사각형의 넓이를 1보(步)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이어 고려척 5척은 대보령척 6척과 같다고 하였다. 또 1870년 일본 대장성(大藏省)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대척은 곡척(曲尺)1척1촌7분3리에 해당하는데 이 대척은 고려척에 해당한다 하였으니 <대보령>이전의 일본의 1보는 고구려척25평방척. 당대척 36평방척인 3.158㎡로 추측된다.
이러한 기준면적이 계승되어 1874년, 일본에서 제정된 길이30.303㎝의 곡척으로 사방이 6척인 기준면적의 넓이를 1보 또는 1평으로 한 것이므로 이때부터 1평은 3.3058㎡가 되었다. 이러한 면적제도가 1910년경 우리나라 국토측량의 기준이 되어 왔으므로 이 면적 단위는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우리나라에 변형된 제도로 도입된 것이다. 이러한 일본제도는1평(보)=3.3058㎡이다. 1무(畝)는 30평=99.174㎡. 1단보(段步)는 300평=991.74㎡. 1정보(町步)는 3000평 =9,917.4㎡ 이였다

가끔 옛 기록을 보면 결(結)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역시도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던 조세를 목적으로 한 땅의 넓이를 가늠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결(結)은 세금을 계산하기 위하여 사용한 농토의 넓이 단위이다. ‘목’이 넓이가 농가 일각에 나누어 주기 위한 면적이었으므로‘목’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시대에서 고려문종 때까지 1결의 넓이는 장년 농부의 열손가락을 기준한 指尺으로 사방640척이 차지한 정방형으로 15.447.5㎡가 된다. 고려 문종 때부터는 田土를 3등급으로 나누어 1결은 下等田1결이되고 中等田1결은 하등전의 9분의 6,25배. 上等田은 1결의 4배에 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삼등전 제도는 다시 개혁되어 조선 세종 26년부터는 6등급으로 나누게 되는데 1등전1결의 넓이는 고려때 하등전1결의 3분의2 넓이로 그 넓이는 주척477.5척 사방의 정방형으로 하였다. 따라서 1등전 1결의 넓이는 9,859.7㎡로 변했다.

결(結)의 단위 아래 부가 있는데 부(負)역시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때 농토의 면적을 표시하기 위하여 만들어 사용되었던 단위제도로 한 줌(옹큼)을 기준면적으로 하여 10줌을 1속 또는 1단이라 하였고 10단을 한짐이라 하고 100짐을 1결 또는 1목으로 하였음으로 부(負)는 중간면적 단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실질적인 제도는 장년 농부의 열손가락 폭을 10指 로 한 指尺64척이 만드는 정사각형의 넓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실질적인 면적은 154,3㎡였다.
이 제도는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전토의 量田을 기준면적 1결로 하지 않고 1부로 정하고 있었으므로 1부는 표준면적 단위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옛날에 租稅量도 1부(負)당 3升씩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러한 1부의 면적도 고려문종 때부터 3등급으로 나누어지게 되자 각 등급에 따라 1부의 면적도 다르게 되었으며 특히 1444년 (세종26)양전법 개정된 이후에는 1부는 각 等田尺으로 사방10척의 정사각형 면적이 되었다. 대한제국 때인 1902년(광무6)부터는 100㎡인 1a를 1부로 제정하였다.

부(負) 아래에 속(束)이 있다. 이 단위 제도는 기준면적 단위로 제정한 1파(把) 또는 한줌의 10배 넓이로서 1속 또는 한 단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10속(束)을 1負 또는 한짐. 100부를 1결(結) 또는 한 목으로 하였다. 이와 같은 단위 명은 우리나라 특유의 제도로 농작물 한 줌. 한단. 한짐. 한목의 크기의 차이로 되어 누구나 쉽게 넓이를 크고 작음을 판단할 수가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단위명 이외에도 기준면적의 제정법이 농부의 손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아. 상고 때부터 우리 조상들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써온 제도임을 밝힐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위와 같은 넓이를 재는 기준이 장정의 지척(指尺)에서부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척은 사람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기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라에서 기준을 삼은 것이 있으니 바로 유척(鍮尺)이나 주척(鑄尺)이라는 것을 사용하였다. 유척과 주척은 조선시대 놋쇠로 만든 표준자이다. 보통 한자보다 한치가 더 긴 것을 단위로 하였으며 조선시대 기계 및 금속 관련등 기술자들이 사용하였다. 그러면 자의 종류를 한번 나열해보자
황종척(黃鍾尺)이 기준 측량도구이다. 원형으로 만든것은 주척이고 사각형으로 만든것은 유척이다. 유척은 4면에다 각면에 호환되는 주척, 황종척, 조례기척, 포백척등을 새겨넣었다. 자의 종류로는 주척에 규정된 자로서, 한 자가 곱자의 여섯치 육푼, 즉23,1cm이다) 황종척(조선시대에 악기 율관(律管)의 길이를 재는데 쓰였던 자)이 있으며 영조척(營造尺=건축관련하여 목수가 쓰는 자. 주척의 한자 네치 구푼 구리에 해당한다) 조례기척(造禮器尺)(자의 8촌3문3리가 황종척 한자와 같다.) 포백척(布帛尺=옷감 및 바느질할 때 쓰는 자)이다.
※ 지방수령이나 암행어사 등이 세금징수나 형벌에 관련하여 사용하였으며 사람이 죽어 검시(檢屍)할 때도 사용하였다.

포백척(布帛尺)
포백척은 침척(針尺)이라고도 한다. 포백척은 중국 송대에‘삼사포백척’이란 용어가 사용된 점을 고려할 때 중국에서 먼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포백척은 세종13년 포백척 제도를 교정하지 않아 중앙과 지방이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이를 교정하자고 하였다는 자료를 볼 때 이때 교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조선전기에 교정된 포백척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경국대전』에 포백척은 황종척(黃鍾尺)의‘1척(尺)3촌(寸)4분(分)8리(釐)’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조선전기 포백척은 약 46,66cm 내외 정도로 유추할 수 있다. 한편 조선 후기의 포백척은 1740년(영조16) 세종대에 제작되어 삼척부에 존재하는 척을 얻어 교정하였다는 자료를 통해 이때 다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교정된 포백척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창덕궁에 소장되어, 있는 사각유척(49,236cm)과 유척(48,874cm)등을 고려한다면 세종대보다도 다소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사각 유척은 조선이 만든 표준의 포백척이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을 갖고 있다. 한편 개항기 일본은 조선의 척을 조사하였는데 포백척을 일본 곡척(曲尺)의 1척6촌1분(48.783cm)으로 파악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 제작되었을 것으로 유추되는 사각 유척과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현존하는 포백척은 50cm 이내의 것도 있지만 긴 것은 50cm~61cm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
※ 실제 민간에서 다양한 길이의 죽척(竹尺)과 목척(木尺)등이 사용된 점을 고려하면 다소 통일되지 못한 것도 있다. (참고자료 : 민백)

정한호 기자  chd0005@hanmail.net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인터넷청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인터넷청도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기고]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추..

청도경찰서, ‘찾아가는 어르신 ..

이서면 추석맞이 새마을대청소 및 ..

- 청도군 새마을지도자 등 벌초시즌..

임종식 경북교육감,

청도경찰서,

청도군, 토속 어족자원 보전을 위한..

청도군 매전면 자율방범대 방역 실..

- 경북교육청, 스마트 해양 수산 산..

이만희 의원, 농식품부 장관·농협..

최신뉴스

이철우 도지사, 이건희 삼성그룹 ..  

경북도, 아프리카TV와 음악으로 독..  

『제1회 재경청도군향우회장배 골..  

청도경찰서, 찾아가는 어르신 교..  

슬기로운 한국생활의 찐~조력자 원..  

과정 중심 평가’활성화를 위한 소..  

경북도, 혈액수급 위기 극복을 위..  

경북농업기술원, 복숭아 초코볼로 ..  

아빠와 함께해서 너무 좋아요..‘..  

울릉도, 갈라파고스제도 등‘섬 식..  

경북 자동차산업, 산학연 협력으로..  

경북의 명소, 경주엑스포에서 맺어..  

주한미군가족 경북 문화․관..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 백두..  

경북교육청, 공동조리로 안전하고 ..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인터넷청도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15-81-12007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청화로 71-11 / 발행인: 정한호 / 편집인 : 최현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한호
mail: chd0005@hanmail.net / Tel: 054-371-0005 / Fax : 054-371-077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58 / 등록일 : 2010년 12월 6일
Copyright ⓒ 인터넷청도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