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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청도군(淸道郡)의 부침(浮沈)

고려시대 청도군(淸道郡)의 부침(浮沈)

2019년 09월 24일(화) 15:30 [인터넷청도신문]

 

= 전호에 이어서

충혜왕 때 청도 출신이었던 김선장이 공을 세워 지군사로 승격되었다는 것이다. 지군사는 후일 군수에 해당하는 지방관이었는데, 종전에 감무를 파견하던 곳에서 지군사를 파견하는 곳으로 되었으니, 승격되었다는 의미는 확실하다. 『고려사』백관지 외직조에 의거해 보면, 고려시대에 주(州)나 군(郡)에는 5품의 지사(知事)를 파견했으니, 지주사 혹은 지군사라 칭하였다.
그렇다면 충혜왕 때 김선장은 어떤 공을 세웠을까?
고려 28대 임금인 충혜왕은 충숙왕의 아들로 31대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의 친형이다. 그는 1328년 2월 세자 신분으로 원나라 볼모가 되어 숙위(宿衛)하며 머물렀다. 25대 충렬왕과 26대 충선왕이 원나라에 의해 왕위를 수시로 빼앗겼던 것처럼, 그의 아버지 충숙왕도 1330년 원나라에 의해 사실상 왕위를 빼앗겼다. 충혜왕은 그렇게 왕이 되었다.
2년간의 짧은 1차 재위 기간에도 정치 상황은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충혜왕은 세자 시절 원나라 승상 엘테무르(燕帖木兒)와 가까이 지냈다. 그리고 세조 쿠빌라이의 고손녀인 이렌첸반(亦憐眞班, 덕령공주)과 결혼했다. 그런데 충혜왕을 지지해 준 엘테무르가 사망하자, 고려 출신 원나라 환관이던 백안(伯顔)의 참소로 폐위되었다. 정치에는 관심 없고 방탕하다는 이유였다. 왕위에서 쫓겨난 충혜왕은 원나라로 소환되었고, 아버지 충숙왕이 복위하였다.

1339년 충숙왕이 죽자, 조적(曺頔) 등이 음모를 꾸며 심양왕 왕고(瀋陽王 王暠)를 옹립하려는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충혜왕은 직접 말을 타고 나와 화살을 쏘며 반격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충혜왕의 군사들이 활을 쏘아 조적을 죽이면서 반란을 평정할 수 있었다. 충혜왕은 원나라 측에 왕위 계승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충혜왕은 원나라로 압송되어 형부(刑部)에 투옥되었고, 상당수 고려 관리도 함께 압송되었다. 그런 와중에 충혜왕을 견제하던 환관 백안이 권력을 잃는 등 원나라 정계 개편으로 혼란에 빠졌다. 이를 틈 타 충혜왕은 복위되어 6개월 만인 1340년 5월 고려로 귀국하였다.

충혜왕이 재집권하여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조적의 난을 평정할 때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공신 작호를 주어 포상의 은전을 내렸다. 김선장은 대호군(大護軍) 신분으로 반란군 평정에 앞 장 선 결과 1등 공신이 되었다. 당시 1등 공신에게 내린 포상을 보면, 공신각에 초상을 걸게 하였음은 물론 그들의 부모와 처는 3등을 뛰어넘어 작위를 주고, 아들 1명에게 7품직을 줄 것이며, 아들이 없으면 조카나 사위에게 대신 8품직을 주고, 아울러 토지 100결과 노비 10구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이때가 충혜왕 후3년, 즉 1342년 6월이었다.
하지만, 당시 고려 국내 정세는 정치 세력 간의 알력이 심했는데, 충혜왕을 견제하던 원나라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奇轍)을 중심으로 한 친원파가 핵심이었다. 이들의 음모에 의해 충혜왕은 1343년 11월 원나라 환관이자 사신으로 왔던 고용보 등에게 구타당한 후 원나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응양군(鷹揚軍) 김선장은 창에 찔리는 큰 부상을, 당했고, 그도 결국 충혜왕과 함께 원나라에 압송되는 처지가 되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충혜왕 입장에서 김선장은 매우 충성스런 신하였다. 그의 공로를 생각해서 감무를 파견하던 청도를 지군사로 승격해 주었고, 이런 사실에 입각하여, 『고려사』 지리지에서 “충혜왕 후4년 청도군 출신 상호군 김선장의 공으로 지군사로 승격했다(忠惠王後四年, 以郡人上護軍金善莊有功, 陞知郡事).”라고 서술했던 것이다. 이를 좀 더 압축해 보면, 김선장이 1등 공신에 올랐던 것이 충혜왕 후3년(1342) 6월이었고, 충혜왕이 원나라로 끌려간 것이 이듬해 11월이었으니, 충혜왕 후4년(1343) 상반기 즈음에 청도가 승격되었음이, 분명하다
= 다음 호에 계속.....

정한호 기자  chd0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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