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천(東倉川)의 이름은.
동창천(東倉川)의 이름은.
정한호 기자 / chd0005@hanmail.net
입력 : 2012년 09월 12일(수)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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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地圖)상에 보면 운문댐에서부터 유천(楡川)에 이르는 강 이름이 동창천(東倉川)으로 표기 되어 있다. 옛지도에는 운문천(雲門川)이거나 대천(大川)이었는데 언제부터 동창천(東倉川)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다. 물론 물길이 동창(東倉)이 있는 곳을 지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곳은 옛날 아주 옛날 역사가 기록될 때부터 솔이산성(率伊山城)이 있었던 곳이다. 솔이산성은 높다는 뜻이라고 하며 지금의 매전면 일대에서 금천면 일대 또는 운문면 까지도 아우르는 지역이었다.
지금 통내산이라고 하는 산은 옛날부터 이 지역의 주민들은 토함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언제부터 통내산이라고 기록되었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고 지도에는 통내산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왜정시대에 측량을 하면서 아마도 경주의 토함산과 혼동이 있을까 하여 토함산을 통내산으로 기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이렇듯 이 부근은 옛날부터 산동의 중심지였었고, 조선 초까지만 해도 산동(山東)지역에는 관(官)의 혜택을 보기가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있고 학문과 인격이 높았던 두 어른(소요당 박하담선생. 삼족당 김대유)께서 고을원님에게 의견을 제시하여 사창(社倉)을 만들었다고 하며 원래 폐사(廢寺)를 시켜야 할 절을 이용하여 사창을 삼았다고 하는 곳이 구동창(舊東倉)이다.
현재 죽산박씨(竹山朴氏)가문의 묘와 그 앞에 밭이 있는 언덕이 바로 그 터였다고 전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절이 하나 정도는 들어서 있을만한 곳이다. 이곳에 창고를 마련하여 가을이면 세곡(稅穀)을 걷어서 이곳에 보관을 하였고 또한 봄이 되면 구휼(救恤)할 곡식을 이곳에서 내다 분배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매전(買田)은 산동지역의 위아래로 볼 때 거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려 때부터 조선후기 까지 이곳에 역(驛)을 두어 행정의 모든 것을 관장하였던 것이라 생각이 된다. 이곳에서 유천역(楡川驛)까지 약40리 정도떨어져 있고 또한 위로 지촌역(芝村驛)까지가 약 40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청도 본거지 지금의 화양읍(상읍내면)까지도 약 50리 정도이니 가히 중앙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 사창을 두어 산동지역의 백성들의 세곡과 구휼사업을 편리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민의를 파악하여 고을원님인 수령에게 전달하였고 민의 편에서서 일을 했던 것이다. 뒷날 구동창에서 신동창(新東倉)으로 창고를 옮겨지었다. (현재 매전농협 농기구센터주변) 원래 두 어른의 고향은 산동이 아니다. 상북면 수야리(지금의 이서면 수야리가 고향이다.) 두 어른이 운문산 일대를 유람을 하고 산동지역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지어 뒷날 노후를 즐겼으니 삼족대와 선암이 바로 그곳이다. 삼족당 선생은 지금의 삼족대에다 별서(別墅)를 지어 살면서 산청의 조식선생과 교류가 있었고, 소요당 선생께서는 선암사 옆에 별서(別墅)인 소요당(逍遙堂)을 지어 운문구곡을 영위하면서 세상을 즐기고 살았다. 두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시자 이곳의 주민들이 두 어른의 은혜에 감동을 받아 창고 옆에 사당을 지어 봄 ? 가을로 제사를 뫼시니, 군수 황응규(황희 정승의 손자)가 청도로 부임해 와서 우리지역을 순행하는 도중에 사창(社倉)옆에다 사당(祠堂)을 지어서 제사를 뫼시는 것을 보고 어떤 신(神)이길래 사창 옆에다 사당을 지어서 제사를 지내는가 하고 물으니 주민들이 두 선생의 이야기를 하니 “두 분 선생께서 그런 행(行)이 있었다면 마땅히 받들어 모셔야 할 향현(鄕賢)들이다” 하고는 소요당 옆에 폐사가 되어야 할 절 선암사(仙巖寺)를 폐사(廢寺)시켜 선암사(仙巖祠)로 개칭하고 절에 있던 스님을 관리인으로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듯 동창은 용각산 준령의 동쪽에 있는 백성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당시 청도지역의 주인인 어른들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창고의 이름이 지금의 지명(地名)이 되었다.
운문천은 삼족대까지이고 삼족대 앞 우연(愚淵)을 지나 동창이 있는 지역을 감돌아 흘러 내려가면서 이름이 동창천이 되어야 하지만 요즘은 운문댐 아래는 모두 동창천으로 표기 하고 있어 모두 동창천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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