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라는 말은 사전적 용어로는 ‘개울물이나 물이고인 곳에 돌이나 흙 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그것을 디디고 물을 건널 수 있도록 한 다리’라고 정의해 놓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겨울에 개울물을 건너는데 꼭 필요한 다리였다. 경상도 말로 ‘여물게 해라’ 또는 ‘단디해라’는 말도 있고 속담에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는 돌다리가 바로 징검다리이다. 1960년대 까지만 하여도 큰 개울에는 징검다리가 유일한 다리였으니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고 또 아무생각 없이 이용하며 살아왔다. 물론 당시에 섶 다리가 없지 않았지만 청도 산서지역에는 섶 다리를 볼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간에서 양쪽의 관계를 연결하여 이어주는 다리는 징검다리가 고작 일 때도 있었다. 당시에 징검다리를 놓는 곳은 대부분 두 곳을 선정하기 마련인데 강폭이 가장 짧은 곳이거나 아니면 강폭이 가장 넓은 곳을 정하였다. 가장 짧은 곳은 물살은 세지만 돌을 몇 곳에 놓지 않아도 건널 수 있었으며 큰 돌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면 가장 짧은 곳에다 정했다. 또 한곳은 강폭이 넓은 지역에 정한다. 강폭이 넓은 지역은 물살이 약하고 깊이도 얕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징검다리를 놓는 데는 철칙이 있다. 그 철칙은 갑자기 큰물이 지면 자연 징검다리 중간 어느 한곳이 떠내려가게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해마다 보수를 해야 했다. 그때마다 주변에 있는 큰 돌들을 가져다 다리를 놓았다. 그러나 새마을 사업의 성공으로 경제생활이 부유해지고 국가의 경제가 부유해 짐으로 해서 지금은 옛날의 돌다리는 찾아 볼 래야 찾아 볼 수 없는 옛 문화유산이 되고 말았다. 요즘 청도뿐만 아니고 지역, 지역 곳곳에 관광자원 화 한답시고 재미삼아 사람들이 건너다닐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옛 날의 징검다리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시멘트로 돌 본을 뜬 모양으로 갖다 놓았으며, 놓아야 하는 자리 선정도 징검다리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비전문가가 놓고 또 모양을 낸다고 삐뚤빼뚤 놓았는데 이름은 징검다리가 맞네........ 청도에는 억지로 옛 징검다리를 보려고 하면 유천초등학교 앞 응천강에서 볼 수가 있지만 그 나마도 약간의 모습만 보일 뿐 완전한 모습은 아니다. 영남 대로상에 있었던 징검다리는 운문으로 가는 다리였고 노루목으로 해서 조들로 들어오는 지름길 이였기에 중요하였던 것 같다. 그러면 옛 선조들은 징검다리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놓았을까? 옛날 징검다리를 건널 때 모습을 생각하며 얘기를 나누던 스승이신 스님은 나에게 이렇게 전해준다. 옛날에 놓은 징검다리에는 전하는 교훈이 있다. 하고 말씀을 하신다. “징검다리는 우리들의 삶의 흔적이었다. 그 속에도 교훈이 있으니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돌을 일렬로 놓아서 물을 건너는 사람이 신발을 벗지 않고 건널 수 있도록 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대부분의 징검다리나 섶 다리는 아녀자와 겨울을 겨냥해서 만들곤 했다. 가을이 시작되면 그 때 부터 늦은 봄까지는 물이 차거워서 모두 물을 꺼려하기 마련이지 그때마다. 마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징검다리나 섶 다리를 놓았는데 징검다리나 섶 다리는 중간쯤을 부실하게 놓는 것이 철칙이었다. 왜 ? 중간쯤에 부실하게 놓았는가 하면 큰물이 지면(홍수가 날 때는) 떠내려가라고 한 것을 우리는 잘 알지 못 했지만 큰물이 일면 그때 가장 중간에 있는 돌은 쉽게 떠내려가도록 만들었다. 그래야만 다른 돌들과 주변의 논밭을 완전하게 보호되도록 했던 것이다. 만약에 모두 굳건하게 만들어 놓으면 큰물이 질 때 풀 무더기나 나무들이 떠 내려와 돌 중간 중간에 걸리게 되면 돌다리는 물론이고 물이 넘쳐 부근의 농작물에도 피해를 주게 마련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징검다리 중앙에는 작은 돌을 여럿 모아 약하게 만들어 큰물이 지면 돌들이 쉽게 떠내려가 다른 돌들을 보호되게 하였던 것이다 그 다음은 또 쉽게 보충할 수 있도록 작은 돌 여러 개를 주워다 놓았었지 아마”아 ! 이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들의 선조들은 자연을 잘 이해하고 자연의 섭리를 잘 활용한 것을 알 수가 있다. 마치 양반가옥에서 샛문을 만들어놓아 젊은 부부가 부. 모 몰래 합방을 하도록 숨통을 트여 주는 것과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너무 빡빡하게 굴면 곁에 사람이 붙지 않는 것과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살았던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떻한가? 한 방울의 물도 새면 안 돼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방울의 물이 새면 점점 더 커져서 결국은 커다란 재앙을 맞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치수(治水)를 할 때 물을 분산(分散)시켜서 힘이 약해지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물을 한곳으로 모아서 빠져나가도록 하는 치수(治水)를 한다. 그러다 보니 한곳이 막히면 대단한 화를 불러일으킨다. 바로 시멘트 만능주의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시멘트만 있으면 모든 것이 자유롭고 물이든 바람이든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항상 견고(堅固)한 것이 없다. 전지전능한 성인도 3가지는 이루지 못한다고 하니 첫째. 정업난멸(定業難滅)로, 정해진 인연을 멸(滅)할 수 없다. 지어진 인연을(죄업 또는 선업)대신 없애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지은 업은 자기가 받는다는 것이다. 내가 밥을 먹었으면 내가 배가 부르고 내가 굶었으면 내가 배가 고프다는 말이다. 어느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둘째, 무연중생(無緣衆生) 제도난(濟度難)으로 인연이 없는 중생은 제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을 제도 할 수가 없다는 뜻인데, 성인이 태어나서 백년 전후로 사는데 성인이 태어나서 세상에 존재하는 같은 기간에 같은 장소에 있어야 제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먼저 태어났다가 먼저 죽던가 아니면 늦게 태어나서 성인을 만날 수 없다거나 설사 같은 시간에 태어났다해도 보고 만날 수 있는 같은 장소에 없다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생활 반경이 불과 3백리 정도인데 3백리 밖에서 살아간다면 같은 시기에 있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와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멸중생계(滅衆生界) 중생의 세계를 없앨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중생의 세계가 없다면 고통 받는 사람도 없을 것인데 고통의 세계를 없앨 수 없다. 어떤 종교의 교주도 성직자도 중생의 세계를 없앨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에 중생세계나 고통세계를 없애버리면 모두가 안락국(安樂國)에 거주하여 고통 없이 살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을 없앨 수 없다는 말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이론만가지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행동만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이론도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도 옮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 제일의 종교에서도 분명 3신을 사용한다. 불교에서 불타가 있으면 좌우 협시를 반듯이 두었고, 천주교에서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있어야 하는 것은 똑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한다. 징검다리를 놓는 지혜를 우리의 삶에 접목시켜서 항상 생활가운데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살자는 말을 하고자 함이다. 이론과 실천이 겸해야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 넘어지지 않고 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강하면 뿌러지는 진리를 알고 강하고 부드러움을 조절하여 원만(圓滿)하게 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